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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공식 포스터|제공·배급: ㈜쇼박스
본 이미지는 영화 소개 및 비평 목적으로 인용했습니다.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좀비가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설정은 전에도 봤지만, 균사체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문을 열고 인간을 구별하는 좀비라니.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는 내내 등이 서늘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네 번째 좀비 영화 <군체>는 단순히 무서운 장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의 집단 시스템까지 건드립니다.
집단지성 좀비라는 설정이 왜 더 무서운가
어릴 적 제가 처음 만난 공포의 대상은 흰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었습니다. 공영 TV에서 방영하던 귀신 드라마가 공포물의 거의 전부였고, 강시나 드라큘라를 알게 된 것도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좀비는 <블레이드>, <레지던트 이블>, <월드워 Z> 같은 서양 영화를 보며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다 <부산행>이 개봉하면서 좀비가 한국에서도 익숙한 대중 장르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체>가 기존 좀비 영화와 확실히 다른 지점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끌어왔다는 데 있습니다. 집단지성이란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집단 전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것도 서로 연결되면 알아낼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영화 속 좀비들은 흰색 균사체(菌絲體)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균사체는 곰팡이나 점균류에서 볼 수 있는 실 모양의 세포 구조물인데, 영화에서는 좀비들을 잇는 생체 통신망으로 활용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설정이 단순한 상상에서만 출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황색망사점균(Physarum polycephalum)을 이용한 미로 실험에서 단세포 생물이 스스로 최단 경로를 찾아내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출처: Science, Toshiyuki Nakagaki et al.). 영화는 이 실험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좀비 하나가 문손잡이 여는 법을 배우면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른 좀비들도 그 방법을 알게 되는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이 대목이 특히 무서웠습니다. 눈앞의 좀비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들이 실시간으로 인간을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다가왔습니다.
초고층 빌딩이라는 수직 폐쇄 공간도 공포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층과 층 사이의 이동은 제한되고, 탈출할 수 있는 방향도 위아래뿐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점점 영리해지는 좀비 떼와 마주해야 한다는 설정이 상당한 압박감을 줍니다. 이 영화는 익숙한 밀실 공포(Claustrophobia)를 수직으로 확장해, 건물 전체를 거대한 함정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 균사체 네트워크: 좀비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생체 5G
- 황색망사점균 실험: 단세포 생물의 최적 경로 탐색에서 가져온 과학적 아이디어
- 수직 폐쇄 공간: 생존자의 이동 경로와 선택지를 극도로 제한하는 초고층 빌딩
- 개체 업그레이드: 좀비 하나의 학습 결과가 집단 전체에 곧바로 퍼지는 진화 방식
사회비판 메시지, 그리고 아쉬움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과 <서울역>에서도 좀비를 현실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활용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시선을 기대했는데, <군체>는 예상대로 여러 장면에서 그 연장선을 보여줍니다. 정치인과 경찰, 살아남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모습은 단순한 갈등 장면이라기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드러나는 사회의 민낯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군집 행동(Swarm Behavior)의 무한 루프에 잘 드러납니다. 군집 행동은 개체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집단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다른 이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셈입니다. 영화는 이를 개미 군체에서 나타나는 무한 루프 현상에 빗댑니다. 효율적인 시스템과 알고리즘으로 촘촘하게 연결됐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지는 잊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영화 중반부의 유인원 연구실 장면에서는 <월드워Z>가 떠올라 몰입이 잠시 끊겼습니다. 집단지성과 무한 루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어릴 때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가 자연스럽게 생각났습니다. 소재는 새롭지만 익숙한 작품들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어, 아이디어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결말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 내내 차곡차곡 쌓아온 복선과 이야기의 무게에 비해 마무리가 다소 급하게 느껴졌습니다. 사건을 설계한 서영철이라는 인물이나 생물학적 테러(Bioterrorism)라는 소재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생물학적 테러는 바이러스나 독소 같은 생물학적 물질을 의도적으로 퍼뜨려 대규모 피해를 일으키는 공격을 뜻합니다. 영화에서는 체인스 바이오 빌딩에서 벌어진 바이러스 주입 사건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됩니다(출처: WHO, Biological Agents Fact Sheet).
그럼에도 이 영화를 좋게 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집단지성이라는 생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개념을 좀비 장르에 진지하게 접목하려는 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의 익숙한 현실을 배경으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 역시 연상호 감독다운 부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군체 영화, 부산행보다 무섭나요?
A. 두 영화는 공포의 결이 다릅니다. <부산행>이 빠른 전개와 감정적인 몰입으로 긴장감을 만든다면, <군체>는 좀비가 인간을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설정으로 불안감을 키웁니다. ‘저 좀비가 지금 무엇을 알아낸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니는 영화입니다. 빠르고 거친 공포를 좋아하는지, 생각할수록 서늘해지는 공포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체감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Q. 전지현 분량은 많은 편인가요?
A.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전지현의 출연은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주요 생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며, 액션과 감정 연기를 모두 보여줍니다. 전지현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더라도 분량 면에서 크게 아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Q. 집단지성 좀비 설정이 실제 과학을 근거로 한 건가요?
A. 영화가 아이디어를 가져온 황색망사점균 미로 실험은 실제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단세포 생물이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는 모습이 과학 저널에 발표됐고, 영화는 이 원리를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한 좀비들의 집단 학습으로 확장했습니다. 완전히 허구적인 상상이라기보다 실제 생물학적 현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설정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Q. 좀비 영화 처음 보는 사람도 볼 만한가요?
A. 좀비 장르를 처음 보는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좀비가 변이하는 과정처럼 장르 특유의 잔인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자극적인 영상에 민감하다면 이 점은 미리 알아두는 편이 좋습니다. 공포 자체보다 사회적인 메시지나 과학적인 설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군체>는 한국 좀비 장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집단지성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공포에 접목하고, 초고층 빌딩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삼아 현실적인 압박감을 높인 점이 좋았습니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사회 비판적인 시선도 여전합니다. 특히 기득권층과 평범한 시민들의 가치가 충돌하는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몇 장면과 서둘러 끝맺은 듯한 결말은 분명 아쉽습니다. 그래도 좀비 영화를 좋아하거나 집단지성, 군집 행동 같은 개념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관에서 한 번 경험해 볼 만합니다. 완벽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장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시도가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