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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영화 《마녀》(2018) 공식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급.
포스터는 영화 소개 및 리뷰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보고 나왔을 때, 머릿속에 자꾸 다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SF 장르 특유의 시원함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집에 돌아와 검색창을 열었고,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박훈정 감독의 <마녀>. 한국 초능력 액션 영화를 얘기할 때 제가 가장 먼저 꺼내는 작품입니다.
전반부가 느리다는 불만,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솔직히 처음 극장에서 볼 때, 전반부에서 살짝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평범한 시골 여고생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고, 친구와 밥을 먹고, 부모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들이 꽤 길게 이어지거든요. 감독이 약 3시간 분량을 1시간이나 덜어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기승전결의 4단계라기보다는 '기'와 '결'만 있는 2단계 구조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이 지루함이 전부 의도된 설계라는 걸요. 자윤은 극 중에서 모든 등장인물과 관객까지 동시에 속이고 있습니다. 몸이 약한 척, 두통으로 고생하는 척, 평범한 고등학생인 척. 이 위장 연기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전반부의 느린 템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겁니다. 이른바 내러티브 위장술(narrative camouflage), 쉽게 말해 관객이 주인공의 정체를 의심하지 못하도록 일상성을 철저히 쌓아 올리는 연출 전략입니다. 제가 두 번째 감상에서야 이걸 온전히 납득했습니다.
영화 속 인체 실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실제 구매한 자료들이고, 실험실 씬 촬영 현장에는 피를 너무 많이 뿌려 배우가 걷기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박훈정 감독은 피를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고 하는데, 이 불편한 간극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드는 힘인 것 같습니다.
- 전반부 일상 묘사는 관객을 속이기 위한 의도된 연출
- 자윤은 극 중 모든 인물과 관객을 동시에 기만하는 구조
- 원본 분량은 약 3시간, 1시간가량 편집 후 현재 버전 완성
- 인체 실험 자료는 실제 구매한 사진 사용
20분의 액션신, 이것 하나로 모든 걸 납득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지금도 꺼내 보는 이유는 결국 이 부분 때문입니다. 자윤이 본성을 드러내는 후반부 액션 시퀀스. 평범한 여고생의 외형에서 순식간에 전환되는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앞으로 몸이 기울어졌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리쉬 액션(stylish action), 즉 캐릭터의 개성과 능력치를 시각적 연출로 압도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 완성도 높게 구현됩니다. 순간이동에 가까운 이동 속도, 염동력(telekinesis), 초인적 신체 내구성까지. <루시>나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후반부에서 느꼈던 그 쾌감과 결이 비슷한데, 한국적 감성으로 재해석된 버전이라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캐릭터 설계도 꼼꼼합니다. 귀공자 역의 최우식 배우는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손톱을 깨무는 버릇을 만들었고, 감독이 이를 바로 캐릭터에 반영했습니다. 미스터 최는 1세대 실험체로서 부작용과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 말수가 적고 항상 껌을 씹는다는 설정이 있었고요. 닥터 백은 초기 시나리오에서 남성 캐릭터였는데, 자윤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여성에게 더 어울린다는 판단 하에 조민수 배우로 캐스팅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서 액션신의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벽을 타는 귀공자 장면은 실제 배우의 몸을 3D 스캔한 디지털 캐릭터로 구현한 것이고, 대진대학교에서 촬영된 복도 액션씬은 잔인하다는 이유로 편집될 뻔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특히 아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한국형 초능력 액션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장면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연간 보고서에서도 <마녀>는 2018년 국내 개봉 장르 영화 중 독립 제작 SF 장르로는 이례적인 흥행 사례로 분류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마녀 시리즈, 1편을 넘어선 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영화는 총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입니다. 현재까지 1편과 2편, 그리고 스핀오프인 <폭군>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폭군>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2편은 전편 대비 액션 분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1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말이 이 시리즈에는 유독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2편은 액션의 양을 늘리는 방향을 선택했지만, 1편이 가졌던 반전 서사의 밀도를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극적 반전(plot twist), 즉 서사 중반까지 감춰진 주인공의 의도가 한 번에 뒤집히며 관객의 인식을 재구성하는 장치가 1편에서만큼 강렬하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된 거." 박훈정 감독이 영화의 궁극적인 주제라고 꼽은 이 대사가 저는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배우와 감독 모두 가장 좋아하는 대사라고 밝혔는데, 짧은 한 문장이지만 자윤이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실험체로 만들어졌지만 그 어떤 통제도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됐다는 선언. 이 주제 의식이 1편에서 가장 선명하게 살아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SF 영화를 접한 건 어릴 때 극장 앞에서 긴 줄을 보고 그냥 돌아선 <우뢰매>였습니다. 성인이 돼서는 미국 드라마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과도한 욕설은 몰입을 끊는 순간이 적지 않고,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2병 말기 같다는 표현이 나올 만한 장면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그 모든 단점을 후반부 액션 하나가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마녀, 처음 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전반부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반부는 후반부 반전을 위한 필수 설계이기 때문에, 지루하더라도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반부 액션신이 시작되면 앞서의 답답함이 한꺼번에 풀리는 구조입니다.
Q. 마녀 1편, 2편, 폭군 중 어떤 걸 먼저 보는 게 좋을까요?
A. 1편부터 순서대로 보는 것을 권합니다. 1편이 세계관의 핵심 설정과 주인공의 정체를 담고 있고, 반전 서사의 밀도가 가장 높습니다. 2편과 스핀오프 <폭군>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작품으로, 1편을 먼저 보지 않으면 캐릭터 맥락을 놓칠 수 있습니다.
Q. 마녀 3편은 나오나요?
A. 영화는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엔딩에 후속편을 예고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이 보는 자료를 통해 아직 많은 실험체가 살아있음을 암시합니다. 3편의 공식 제작 일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Q. 영화 마녀의 액션신은 CG인가요?
A. CG와 실제 촬영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귀공자가 벽을 타는 장면은 배우의 몸을 3D 스캔한 디지털 캐릭터를 활용했고, 빗방울이나 배경 일부도 CG로 처리됐습니다. 반면 대진대학교 복도 액션씬은 실제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됐습니다.
결론
아쉬운 점이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과도한 욕설, 설명형 대사, 기승전결보다 기·결 중심으로 쏠린 구조. 그럼에도 제가 우울한 날이면 이 영화의 후반부 액션신을 찾게 되는 건, 그 20분이 주는 쾌감이 그 모든 단점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한국형 스타일리쉬 액션 영화로서 <마녀> 1편은 지금도 정주행할 가치가 있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보기 전에 1편만 먼저 보셔도 좋고, 이미 봤다면 전반부의 위장술에 집중해서 다시 한번 보는 것도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제가 두 번째 감상에서 이 영화를 완전히 다르게 느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