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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영화 《엽기적인그녀》(2001) 공식 포스터, 제작: 신씨네, 배급: 아이엠픽처스·시네마서비스.
포스터는 영화 소개 및 리뷰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코미디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눈물을 닦은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2001년 대학생 시절, 딱 그 상황을 겪었습니다. 전지현 배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을 빼앗겼던 스물한 살의 저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게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엽기적인 그녀》입니다. 최근 KT 본사 2층에 있는 KT 온마루를 방문했다가 PC통신 시절 모뎀과 그 시절 인터넷 문화로 꾸며진 전시 공간을 마주하면서, 그 기억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PC통신 웹소설에서 스크린까지, 그 탄생의 온도

KT 온마루 전시관 안에는 1990년대 말 인터넷 초창기 시절을 재현한 공간이 있습니다. 56K 다이얼업 모뎀, 지금은 사라진 포털 사이트 화면들, 그리고 PC통신 게시판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 제가 직접 걸어 들어가 보니, 그 공간이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엽기적인 그녀》의 탄생 배경 그 자체였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99년 8월, PC통신 서비스인 나우누리에 '견우74'라는 아이디로 연재가 시작된 웹소설입니다. 여기서 PC통신이란, 지금의 인터넷과는 달리 전화선을 이용해 특정 서버에 접속하던 방식을 말합니다. 속도가 느리고 텍스트 중심이었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피어났습니다. 이 웹소설은 2000년에 책으로 출간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곽재용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2001년 영화로 완성됐습니다.
저는 KT 온마루에서 그 시절 모뎀 소리가 재생되는 코너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삐익- 하는 접속음을 들으며 '견우74'가 밤마다 타자를 두드리던 그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관람 리뷰를 작성하면 굿즈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왔는데, 솔직히 굿즈보다 그 공간이 주는 감각적인 타임슬립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프롤로그는 사실 후반부의 '2년 후' 장면을 앞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프롤로그(prologue)란 본편 이전에 배치되는 도입부 장면을 말하는데, 곽재용 감독은 이것을 복선(伏線), 즉 나중에 펼쳐질 내용을 미리 암시하는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단순히 분위기를 잡으려 한 게 아니라, 관객이 나중에 엔딩을 마주했을 때 "아, 그 장면이 이거였구나"를 느끼게 하려는 계산된 연출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초반에 스쳐 지나가는 노인 한 명입니다. 전철 플랫폼에서 그녀와 견우가 처음 마주치는 그 순간을 지켜보는 노인 — 이 인물이 사실은 미래에서 과거로 온 견우라는 설정입니다. 감독이 즐기는 시간여행자(time traveler) 모티브, 쉽게 말해 미래의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중요한 순간을 목격한다는 설정이 조용히 심어져 있었던 겁니다. 영화를 세 번 봤던 저도 이걸 몰랐습니다. DVD 코멘터리를 통해 처음 알았을 때, 그 허탈함과 감탄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 원작: 1999년 나우누리 PC통신 연재 웹소설 ('견우74' 아이디)
- 2000년 단행본 출간, 2001년 곽재용 감독 연출로 영화화
- 프롤로그는 후반부 '2년 후' 장면을 앞으로 배치한 복선 연출
- 초반 노인 = 미래의 견우(차태현 분장), 시간여행자 설정이 숨겨져 있음
- KT 온마루 전시관에서 PC통신 시대의 분위기를 직접 체감 가능
촬영 현장의 땀과 애드리브, 그리고 전지현이라는 존재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전지현이었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극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왔을 때 느낀 건 단순히 "예쁘다"가 아니었습니다.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소동을 벌이고, 견우를 난처하게 만들면서도 그 뒤에 깊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그녀'의 입체적인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지하철 장면은 사실 굉장히 복잡한 촬영이었습니다. 창밖 배경은 크로마키(chroma key), 즉 녹색이나 파란색 배경 앞에서 배우를 촬영한 뒤 컴퓨터로 실제 배경을 합성하는 기술로 처리됐습니다. 스태프들이 전철을 직접 흔들어 손잡이가 움직이게 만들었고, 스테디캠(steadicam, 카메라를 안정적으로 이동 촬영하는 장비)을 든 촬영감독이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창밖 풍경까지 트래킹하느라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보니, 그 모든 고생이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더 놀라웠습니다.
전지현 배우의 애드리브(ad-lib, 대본에 없는 즉흥 연기)는 영화 전체 분위기를 한 단계 올려놓았습니다. 가발을 털어서 다시 씌우는 장면은 감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기였고, 현장에서 모두가 터져 버려 그대로 OK 컷으로 사용됐습니다. 차태현 배우 역시 기억이 다하지 않을 정도로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담을 넘을 때 바지 찢어지는 소리를 후시(後視, 촬영 후 별도로 녹음해 입히는 음향 작업) 없이 현장 그대로 담은 것도 감독만 알고 있던 디테일이었습니다.
싸대기 장면은 촬영 과정 자체가 범상치 않았습니다. 후시 처리 없이 실제로 맞는 소리를 그대로 사용했고, 차태현 배우가 실제로 멍이 들 때까지 반복 촬영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그 소리가 왜 이렇게 생생하게 들렸는지, 이유를 알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스카이X 장면에서 전지현 배우가 추가 비용까지 들여가며 두 번이나 탑승한 사실도, 배우의 완성도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녀'처럼 겉으론 거칠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 안에 따뜻한 감정을 품은 사람에게 이상하게 끌린다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건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밀도였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 따르면 《엽기적인 그녀》는 2001년 국내 개봉 당시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며 그해 흥행 상위권에 올랐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 시대 청춘들의 감정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정선 타임캡슐 나무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감독이 기차를 타다 우연히 발견한 그 소나무를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다시 찾아와 촬영한 것인데, 현재는 정선 타임캡슐 공원으로 조성되어 '엽기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실제 타임캡슐을 무료로 보관해주는 서비스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냥 영화 속 장치였던 것이 현실로 이어졌다는 게 묘하게 감동적이었습니다(출처: 정선군청).
그리고 영화의 명대사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랍니다"는 감독이 순수 창작한 문장입니다. 이 대사가 영화 초반 노인(미래의 견우)의 입에서 나오고, 엔딩에서 견우가 똑같은 대사를 반복한다는 것 — 그 구조를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영화 전체가 완전히 다르게 읽힙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이중 구조를 제대로 소화한 한국 멜로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엽기적인 그녀는 실화인가요?
A. 네,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1999년 PC통신 나우누리에 '견우74' 아이디로 연재된 웹소설이 원작으로,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영화화 과정에서 각색이 더해졌고, 곽재용 감독이 시간여행자 설정 등을 추가하면서 원작과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됐습니다.
Q. 영화 초반에 나오는 노인이 정말 미래의 견우인가요?
A. 감독의 설정상 맞습니다. 전철 플랫폼에서 그녀와 견우의 첫 만남을 지켜보는 노인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견우입니다. 감독은 이 설정을 관객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각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원했다고 DVD 코멘터리에서 밝혔습니다. 엔딩에서 견우가 노인과 똑같은 명대사를 하는 장면이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해줍니다.
Q. 정선 타임캡슐 공원은 실제로 갈 수 있나요?
A. 네, 실제로 방문 가능합니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2011년에 공원으로 조성했으며, 영화 속 소나무는 '엽기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실제 타임캡슐을 보관해주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어서, 영화 팬들의 성지순례 코스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Q. 극장판과 DVD판 차이가 있나요?
A. 꽤 차이가 있습니다. DVD판에는 극장판에서 삭제된 장면들이 여럿 추가되어 있습니다. 견우가 잠든 그녀를 보며 반하는 목걸이 컷, 두 사람이 우연히 재회하기 1시간 전 상황,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감독과 배우의 코멘터리도 수록되어 있어서, 영화를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DVD판을 따로 챙겨 보시길 권합니다.
Q. 지하철 씬은 실제 전철 안에서 찍은 건가요?
A. 부분적으로 다릅니다. 차태현·전지현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 중 일부는 창밖에 크로마키 판을 설치하고 배경을 CG로 합성했습니다. 반면 후반부 분당선 지하철 씬은 실제 열차 안에서 촬영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후시 녹음을 고려했다가 현장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결론
KT 온마루 전시관에서 56K 모뎀 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엽기적인 그녀》는 그냥 그 시절 유행했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PC통신이라는 원시적인 플랫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크로마키 합성과 애드리브와 감독의 집요한 복선 설계를 거쳐 하나의 완성된 감정 덩어리가 됐습니다.
제가 스물한 살에 느꼈던 것, 그리고 지금 다시 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 — 두 층위가 포개지면서 이 영화가 왜 20년이 지나도 회자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극장판과 DVD판을 비교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KT 온마루에 들러서 그 시절 통신의 냄새를 직접 맡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전시 관람 후 리뷰를 남기면 굿즈도 받을 수 있으니, 가는 김에 챙기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