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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영화 《올드보이》(2018) 공식 포스터, 쇼이스트(Show East) 배급.
포스터는 영화 소개 및 리뷰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2003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원작 만화를 이미 다 읽은 상태였음에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배우 하영의 가족사 이슈가 뉴스를 달구던 요즘, 다시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아주 오래전,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수십 년 뒤 한 가족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복수의 굴레 — 이기는 자도 없고 살아남는 자도 없다
제가 원작 만화를 먼저 읽었던 터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가 원작을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파트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남자, 그를 붙잡고 서 있는 오대수, 그리고 그 상황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배경음악. 뭔가 심상치 않은 영화라는 걸 그 첫 장면 하나로 직감했습니다.
영화에서 복수는 세 방향으로 엮입니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오대수는 이우진과 철웅에게, 철웅은 오대수에게 각각 복수를 품습니다. 그런데 복수의 성공 여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우진은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오대수는 딸인지도 모르고 근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철웅은 돈 앞에서 복수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셋 모두 비참한 결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우진 역을 맡은 유지태 배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우진이라는 인물은 분명한 피해자입니다. 누나를 잃은 상처는 진짜입니다. 그런데 그 복수의 방식, 즉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도구로 삼아 아버지를 함정에 빠뜨리는 설계는 제가 보기에 그를 피해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 "복수를 꿈꾸는 자도 결백하지 않다"는 감독의 주장이 바로 이우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구현됩니다.
이우진이 오대수를 15년간 감금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대수의 딸 미도와 오대수가 서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두고 둘 사이를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만든 뒤, 최면을 걸어 사랑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최면(hypnosis)이라는 장치가 쓰이는데, 최면이란 피최면자의 의식이 좁아지고 암시에 극도로 취약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우진은 오대수의 딸과 오대수를 이 상태로 몰아넣어 근친상간(incest)이라는 금기를 범하게 만든 것입니다. 근친상간이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 사이의 성적 결합으로,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강력한 사회적 금기로 여겨집니다.
흥미롭게도 이 방식의 시작점은 오대수가 누나를 죽게 만든 방식과 동일합니다. 가벼운 말 한마디가 소문이 되고, 그 소문이 진실처럼 퍼져 수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듯이, 이우진 역시 몇 마디 말로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수단이 서로를 닮아 있다는 점이 섬뜩합니다.
- 이우진 — 복수 성공, 그러나 이후 자살. 고통이 사라지지 않음
- 오대수 — 진실을 알게 된 후 자기 혀를 자르고 기억을 지우려 시도. 최면 실패로 나락
- 철웅 — 돈 앞에 복수를 스스로 포기. 그러나 역시 비참한 결말
색채 상징 — 말 한마디가 피와 슬픔의 색으로 물드는 과정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솔직히 색깔에 그렇게까지 의미가 담겨 있는 줄 몰랐습니다.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 나서야 빨간색과 보라색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빨간색은 오대수의 분노를 따라다닙니다. 갇혀 있는 동안 회색 옷을 입던 그가 벽을 치며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옷이 빨간색으로 바뀌는 것, 처음부터 의도된 색채상징(color symbolism)입니다. 색채상징이란 특정 색을 통해 감정·주제·서사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으로, 박찬욱 감독의 연출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빨간색은 이후 오대수가 풀려나던 상자, 그가 입은 양복 안감, 미도를 처음 만난 횟집, 철웅에게 복수하는 장면의 이빨에 묻은 피, 오대수의 피로 물든 듯 보이는 미도의 빨간 옷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됩니다.
그런데 빨간색이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빨간 옷과 빨간 립스틱을 바른 미도가 노래를 부르고,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모텔에서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이후 빨간색은 분노만이 아니라,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모든 감정과 행동에 대한 경고로 확장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인 미장센(mise-en-scène) 설계입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에서 온 개념으로, 카메라 앞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 조명, 소품, 색채, 구도를 총괄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보라색은 그 빨간색을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슬픔의 색입니다. 이우진이 가진 감정의 변화, 그리고 결국 같은 감정에 휘말리게 될 오대수의 미래를 암시합니다. 자청룡(自靑龍)이라는 중국집 이름 자체가 보라색·푸른 용을 뜻하고, 내부는 빨간색으로 가득합니다. 보라색 손수건, 잘린 손에 낀 보라색 반지, 빨간색 방 안의 보라색 상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문법으로 연결됩니다.
영화 후반부, 오대수가 자신의 혀를 잘라내는 장면에서 보라색 손수건이 빨간 피로 물듭니다. 이우진은 핏빛으로 얼룩진 손수건을 버리고 깨끗한 보라색 손수건을 새로 꺼내 오대수의 입에 넣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피를 멈추기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복수를 완성한 이우진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보라색 손수건에 배설한 뒤 오대수에게 버리는 행위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우진은 빨간 문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합니다.
영화 끝 무렵 오대수 역시 보라색의 파도에서 벗어나 빨간 문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집니다.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올드보이는 200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 수상 자체가 이 색채 설계를 포함한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편 저는 영화를 다시 보면서 녹색과 벽지 패턴에 대해서도 한참 생각했습니다. 오대수가 감금된 공간, 미도의 집, 모텔까지 비슷한 벽지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은 오대수가 어디에 있든 감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녹색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아카이브에서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거나, 직접 영화를 다시 돌려보며 장면을 추적하는 게 제가 권하고 싶은 방식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올드보이 원작이 일본 만화라던데, 영화랑 많이 다른가요?
A. 원작은 쓰치야 가론 글, 미네기시 노부아키 그림의 일본 만화입니다. 영화는 원작의 감금과 복수라는 기본 골격만 가져오고, 근친상간의 구조와 색채 상징, 인물 관계를 대폭 재설계했습니다. 제가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는데, 박찬욱 감독이 원작을 단순히 옮긴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재창조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원작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둘이 다른 방향을 향한 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Q.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한 복수, 도덕적으로 어떻게 봐야 하나요?
A. 이우진을 순수한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누나를 잃은 상처는 진짜이지만, 그 복수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우진 자신도 결백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도 결국 그것, 즉 복수를 꿈꾸는 자 역시 죄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봅니다.
Q. 올드보이 망치 복도 액션은 원 테이크가 맞나요?
A. 정확히는 단일 컷처럼 보이도록 찍은 롱테이크(long take) 방식으로 촬영된 장면입니다. 롱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가 오랜 시간 연속 촬영하는 기법으로, 배우와 스태프 모두의 체력과 집중력을 극한까지 요구합니다. 지금도 한국영화 최고의 액션 명장면을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장면이고, 제 개인적으로도 이 장면 하나만으로 최민식 배우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습니다.
Q.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뭔가요?
A.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를 묶어 복수 3부작이라고 부릅니다. 세 작품 모두 복수를 중심 서사로 삼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복수의 허무함과 파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정중앙에 있는 올드보이가 2003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감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결론
제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낸 건 배우 하영의 가족사 이슈 때문이었습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 혹은 아주 오래전의 선택이 수십 년 뒤 어떤 파국으로 돌아오는지를 올드보이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폭력과 근친이라는 불편한 소재로 말이죠. 그 불편함이 오히려 메시지를 더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 결백하지 않다는 이 영화의 주장은, 보는 입장에서 쉽게 동의하거나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이 결론을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번 다시 봐야 했습니다. 2003년 원작 만화를 읽고 영화를 봤던 제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면, 말 한마디의 무게에 대한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