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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았다. 나는 관객들이 아버지의 위치에서 이 사람을 보기를 바란다." 개봉 직후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윤종빈 감독이 남긴 말입니다. 조직폭력을 다룬 영화의 감독이 주인공을 두고 '악당'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단어를 꺼낸다는 것. 저는 이 한 문장이 이 작품의 성격을 거의 다 설명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같은 인터뷰에서 감독은 최익현을 두고 "전형적인 비리형 공무원이자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나쁜 놈을 그리려던 영화가 아니라, 그 시절 평범하게 살아남으려던 사람을 그리려던 영화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글이 붙들 질문은 "조직폭력은 어떻게 소탕됐는가"가 아닙니다. 폭력조직과 공권력이 적이 아니라 동업자였던 시기에, 그 둘을 이어 붙인 중간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1990년 국가가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은 그 유착을 끝냈는가, 아니면 한쪽만 정리한 재편이었는가. 영화의 해석과 남아 있는 기록을 나란히 놓고 따져 보겠습니다.
스포일러 안내: 앞의 세 섹션은 이미 공개된 역사 기록과 감독 인터뷰 범위 안에서만 씁니다. 영화의 마무리는 마지막 섹션 끝의 결말 요약 상자에만 모아 두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공식 포스터, 배급 쇼박스(Showbox). 영화 소개·리뷰 목적으로만 사용했으며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기본 정보 — 개봉일부터 출연진까지
| 개봉일 | 2012년 2월 2일 |
|---|---|
| 감독 | 윤종빈 |
| 러닝타임 | 133분 |
| 관람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 배경 시대 | 1982년 부산 ~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전후 |
| 누적 관객 | 약 470만 명 (위키백과 집계 4,698,291명) |
| 관람 경로 | 극장 개봉 후 OTT 스트리밍 |
관객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화면에서 직접 조회해 확정한 값이 아니라 2차 출처에 기대어 적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단일 수치로 못 박지 않고 "약 470만 명"으로만 표기합니다. 참고로 개봉 당시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총제작비 65억 원, 순제작비 45억 원에 손익분기점이 220만 명이었고, 개봉 보름여 만에 300만 명을 넘겼습니다.
출연진
| 배우 | 배역 | 역할과 실존 여부 |
|---|---|---|
| 최민식 | 최익현 | 부산 세관 공무원 출신 브로커. 감독이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을 취재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힌 인물 |
| 하정우 | 최형배 | 부산 지역 조직의 젊은 두목. 특정 실존 모델에 대한 제작진 공식 발언은 확인되지 않음 |
| 조진웅 | 김판호 | 최형배와 대립하는 라이벌 조직의 두목 |
| 마동석 | 김서방 | 최형배 조직의 행동대원 |
| 곽도원 | 조범석 | 조직을 겨냥한 검사. 현직 검사 출신 인사의 일화가 섞였다는 설이 있으나 1차 출처는 확인되지 않음 |
주먹이 아니라 명함으로 싸운다 — 이 영화가 잡은 자리
줄거리는 길게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뼈대만 말하면 이렇습니다. 1982년 부산, 해고 직전의 세관 공무원 최익현이 압수한 마약을 처리할 곳을 찾다가 지역 조직의 두목 최형배와 마주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칠 뻔하다가 족보를 맞춰 보고는 같은 집안의 아저씨와 조카 사이라는 걸 확인하고, 그 순간부터 최익현은 조직과 검찰 사이를 오가는 중개인이 됩니다. 그리고 8년이 흐른 뒤, 국가가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연결선이 통째로 끊깁니다.
이 작품이 다른 조직폭력 영화와 갈라지는 가장 큰 지점은 바로 그 자리 배치에 있습니다. 주인공이 조직원이 아닙니다. 감독은 시나리오 감수를 맡은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서 '반달' 혹은 '가리지널'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는데, 조직 출신이 아니면서 조직에 얹혀 먹고사는 반쯤의 건달을 가리키는 은어입니다. 최익현이 정확히 그 자리입니다. 같은 인터뷰 기사는 감독이 택한 무대를 "대한민국을 촘촘히 엮어주는 관계의 그물망", 즉 혈연(족보)과 학연, 지연이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무기는 처음부터 주먹이 아니라 명함과 족보였던 셈입니다.

화면에 실제로 반복되는 것도 그쪽입니다. 사람을 때리는 장면보다 명함을 건네고, 호칭을 정하고, 어느 학교 몇 회 졸업생인지를 확인하고, 술자리에서 누구를 소개받는 장면이 훨씬 자주 나옵니다.

이미지출처 : 헤럴드 경제(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189730)
폭력은 여기서 최종 수단이 아니라 협상이 결렬됐을 때만 꺼내는 값비싼 도구에 가깝습니다. 진짜 자본은 "내가 누굴 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저는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날카로운 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사람을 때릴 수 있어도 검찰 인사에는 손을 못 댑니다. 반대로 최익현은 누구도 못 때리지만, 전화 한 통으로 수사의 속도를 바꿉니다. 어느 쪽이 더 강한 자본인지는 영화가 8년에 걸쳐 조용히 증명합니다.

이미지출처 : 영화 스틸샷
톤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감독은 "장르적인 비장미를 강조하기 시작하면 그런 장르적 쾌락으로 넘어가게 된다"며 그 방향을 의식적으로 피했다고 말했습니다. 비장하게 찍지 않으니 남는 건 우스꽝스러움입니다. 굽실거리고, 큰소리치고, 금세 다시 굽실거리는 중년 남자의 리듬. 같은 시기 공권력을 무능이라는 각도에서 들여다본 《살인의 추억》 리뷰와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선명합니다. 저쪽 경찰은 진실에 닿지 못해서 실패하지만, 이쪽 공권력은 애초에 진실을 찾을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거래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1982년 부산에서 1990년 10월 13일까지 — 영화 바깥의 연표

부산의 조직폭력은 1950년대 피란민 사회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부산역사문화대전 서술에 따르면 칠성파 계열이 1960년대에 이름을 알렸고, 월남전 시기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물자의 이권에 개입하면서 몸집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칠성파가 부산의 폭력조직을 사실상 장악할 정도의 세력을 이뤘고, 라이벌로 꼽히던 조직들도 1990년의 단속 국면에서 함께 무너졌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즉 영화가 1982년의 부산에서 출발한 것은 임의의 선택이 아닙니다. 항만이라는 돈줄과 그 돈줄을 나눠 갖는 조직 지형이 이미 완성돼 있던 무대를, 각본이 그대로 빌려 쓴 것입니다.
반대쪽 끝의 날짜는 1990년 10월 13일입니다. 그날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질서 새생활 실천을 위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른바 10·13 특별선언을 내놓습니다. 국가기록원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료 모두 이 선언을 조직폭력을 포함한 민생 치안 전반에 대한 전면 대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배경이 있는데, 아흐레 전인 10월 4일에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계획, 이른바 '청명계획'이 폭로돼 정국이 크게 흔들리던 참이었다는 점입니다. 역사박물관 자료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서술하지만, 선언이 국면 전환용이었다고 못 박는 것은 해석의 영역이므로 저도 "그런 지적이 있다" 정도로만 적어 두겠습니다.
선언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해 12월 31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이 3차 개정되면서 조직폭력·상습폭력·집단폭력·흉기사용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가 이 개정의 목적을 그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성과 쪽 수치도 남아 있습니다. 국가기록원 기록 기준으로 2년 동안 폭력조직 274개가 적발됐고 1,421명이 검거, 1,086명이 구속됐습니다. 같은 기간 경찰 2,200여 명이 다치고 126명이 순직했다고 집계됩니다.
다만 범죄 감소 폭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숫자가 다릅니다. 국가기록원 쪽은 5.9퍼센트, 역사박물관 쪽은 2.7퍼센트라는 수치를 제시하는데 집계 기간과 대상 범주가 달라 생긴 차이로 보입니다. 검거율이 7.4퍼센트포인트 올랐다는 수치도 함께 보고됩니다. 두 공식 자료가 서로 다른 값을 내놓는 만큼, 여기서는 어느 한쪽을 골라 단정하지 않고 범위로만 적어 둡니다.
제가 이 연표를 만들면서 새삼스러웠던 건 8년이라는 길이였습니다. 스크린에서 최익현의 전성기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자식을 키워 올릴 만큼의 시간입니다. 그 사이 조직은 커졌고, 이권은 굳었고, 관계망은 촘촘해졌습니다. 133분 안에 그 세월을 눌러 담았으니 관계가 쌓이는 속도가 실제보다 빨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압축이겠지요.
국가가 선포한 전쟁은 누구를 청산했는가
이제 이 리뷰의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기록에 남은 성과는 앞에서 정리한 대로 조직 단위, 조직원 단위입니다. 274개와 1,421명이라는 숫자는 모두 폭력조직 쪽을 센 값입니다. 그렇다면 반대편은 어떻게 됐을까요. 조직을 봐주고 수사 정보를 흘리고 청탁을 받아 준 공무원과,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챙긴 브로커들은 같은 비중으로 처벌됐을까요.
제가 확인할 수 있었던 범위에서는 그 답이 없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도, 역사박물관 자료도 조직폭력 검거와 구속 통계만 제시할 뿐 유착 공무원이나 중개인 쪽 처벌 규모를 따로 집계해 두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브로커와 공무원은 살아남았다"고 쓰면 그건 제 추측이 사실인 척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정확히 이렇게만 적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았다. 처벌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말해 줄 통계를 제가 찾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공백을 영화가 자기 방식으로 메웁니다. 조직은 무너지고, 두목은 잡히고, 행동대원들은 흩어집니다. 그런데 그 모든 선을 연결하고 다녔던 사람은 다른 결말을 맞습니다. 이게 기록이 확정해 준 사실이냐 하면 전혀 아닙니다. 감독의 해석이고, 이 리뷰가 그 해석을 흥미롭게 보는 이유는 그것이 통계가 비워 둔 바로 그 자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전쟁을 선포했을 때 붙잡기 쉬운 쪽은 늘 명백한 쪽입니다. 문신과 조직명과 전과가 있는 사람들. 반면 족보와 명함으로만 이어져 있는 관계는 애초에 압수할 물건이 없습니다.
감독이 전한 취재 일화 하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시나리오를 감수한 검사 출신 인사가 6공 시절의 일을 들려주면서, 조직원을 잡아넣으면 중진 의원이 전화를 걸어 오고 정보기관이 조직의 파친코 지분 정리까지 해 주더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이 일화는 언론 인터뷰에 실린 전언이지 판결문이나 수사 기록이 아닙니다. 특정 사건으로 확정된 사실처럼 읽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각본이 어떤 증언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재료로는 충분합니다.
인물 쪽 사실 관계도 여기서 정리해 두겠습니다. 최익현에 대해 감독은 "내가 이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 태광실업의 박연차씨이다"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팁 액수나 즐겨 마시던 술 같은 세부까지 조사했다고도 했고요. 그렇다고 최익현이 특정 실존 인물의 전기는 아닙니다. 감독 본인이 같은 자리에서 "1980년대에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았다고 본다"고 말했으니, 한 사람의 재현이라기보다 한 세대의 생존 방식을 한 배역에 모은 쪽에 가깝습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최형배와 김판호를 특정 실존 인물과 연결한 제작진의 공식 발언은 제가 찾지 못했고, 그래서 실명 추정은 아예 하지 않겠습니다.
곽도원이 연기한 검사 조범석에 대해서는 두 명의 실존 인사 일화를 섞었다는 서술이 돌아다니는데, 제가 확인한 출처가 편집형 위키 한 곳뿐이라 확정된 사실로 옮기지 않겠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다뤄 온 현대사 영화들을 시간순으로 세우면 하나의 선이 보입니다. 《서울의 봄》 리뷰가 1979년 겨울의 권력 장악을, 《1987》 리뷰가 그 권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그 붕괴 이후에도 지방의 이권 구조와 관계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각지대를 비춥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헌법이 바뀌어도 세관 창고와 항만 부두의 셈법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 저는 이 네 번째 자리가 이 영화의 역사적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무대가 부산이어야 했던 이유, 그리고 남는 생각
부산은 이 이야기에 필요한 조건을 한꺼번에 갖춘 도시였습니다. 밀수와 통관이 실제로 벌어지는 항만이 있고, 그 항만을 둘러싼 이권에 오래 개입해 온 조직 지형이 앞 섹션에서 본 대로 이미 형성돼 있었으며, 무엇보다 학교와 문중과 고향이 한 다리 안에서 겹치는 밀도가 있습니다. 중앙 정치의 무대인 서울에서였다면 최익현 같은 인물은 한참 더 아래 단계에서 멈췄을 겁니다. 아저씨뻘이라는 사실 하나가 조직 두목 앞에서 통하려면, 그 족보가 실제로 힘을 갖는 지역 사회가 전제돼야 하니까요.
감독 개인의 배경도 여기에 겹칩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신 부친이 경찰 공무원이었다고 밝히면서, 나이 들어 보니 정상적인 월급만으로 그때 부산에서 그런 생활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습니다. 영화가 부산을 배경 장식이 아니라 사건의 조건으로 쓰는 이유가 여기서 짐작됩니다. 이 글을 쓰는 저에게는 부산에 살았거나 일했던 경험이 없어서, 사투리의 결이나 지역 정서에 대해 아는 척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영화가 그 도시를 어떻게 기능시키는가까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저는 해외에 한동안 머물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친구가 한국 영화 중에 이건 꼭 봐야 한다며 권해 줘서 이 작품을 봤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친구》 같은 영화를 예상했습니다. 조직의 세계를 미화하거나 최소한 낭만적으로 비춰 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본 것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친구》의 주인공은 학창 시절부터 서열의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최익현은 시종일관 두 세계의 가운데에 끼어 있습니다. 완전한 조폭도 아니고 완전한 민간인도 아닙니다. 폭력이라는 자본은 없는 대신 행정과 인맥이라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졌고, 동시에 한 집안의 아버지이자 문중의 형님입니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닌 현실을 여러 각도에서 헤쳐 나가는 인물인 거죠.
그래서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주인공이 달라집니다. 《친구》가 한 사람의 상승과 추락이라는 단일한 시선을 따라간다면, 이쪽은 같은 사건을 여러 인물의 도덕적 위치에서 번갈아 보여 줍니다. 어느 회차에는 최익현이 가엾고, 어느 회차에는 최형배가 딱하고, 또 어느 회차에는 검사 쪽이 제일 답답합니다. 누아르 장르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신세계》 같은 영화가 공유하는 미덕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선악의 어느 칸에 넣지 않고 섞인 채로 두는 것.
비판도 적어 두겠습니다. 웃음이라는 톤에는 값이 붙습니다. 관계망의 우스꽝스러움을 실컷 보고 나면, 그 관계망이 실제로 누구의 몫을 빼앗아 갔는지는 화면 밖에 남습니다. 항만 이권이 조직과 브로커에게 흘러갔다는 건 누군가의 돈이 그리로 갔다는 뜻인데, 이 영화에서 그 누군가는 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사건이 정리되는 속도도 제게는 조금 급했습니다. 8년에 걸쳐 한 올씩 엮어 온 관계를 풀어내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마지막 30분은 매듭을 자르는 쪽을 택합니다. 물론 그 선택이 잘못됐다기보다, 앞부분이 워낙 촘촘해서 생기는 대비겠지요.
그럼에도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한 통의 필름이 국경을 넘는 과정으로 좁혀 본 《택시운전사》 리뷰에서도 썼지만,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비극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만 정확히 기록됩니다. 1980년대의 명함과 족보와 술자리가 그렇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1990년 10월의 그 선언을 한 번 찾아보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입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실화인가요?
A. 사건과 인물은 창작이지만 무대는 실제입니다.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이 선포한 치안 정책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이 됐고, 1980년대 부산의 항만 이권과 조직 지형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영화 속 개별 사건이 특정 실제 사건의 재현이라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Q. 최익현은 실존 인물인가요?
A. 아닙니다. 윤종빈 감독이 인터뷰에서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을 취재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혔지만, 이는 에피소드 참고 수준의 발언이지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감독은 최익현을 그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의 전형으로 설명했습니다.
Q. 제목의 '범죄와의 전쟁'은 어떤 사건인가요?
A. 1990년 10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온 특별선언입니다. 이후 같은 해 12월 31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이 개정돼 조직·상습·집단·흉기 폭력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고, 2년간 폭력조직 274개가 적발됐다는 국가기록원 집계가 남아 있습니다.
Q. 《1987》이나 《서울의 봄》을 먼저 봐야 하나요?
A.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세 편을 시대순으로 이어 보면 권력의 장악, 그 권력의 붕괴, 그리고 붕괴 이후에도 남은 지역 이권 구조라는 흐름이 보여서 각 작품의 자리가 더 또렷해집니다.
Q.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나요?
A.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 함께 관람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중고등학생 자녀와는 "영화 제목이 사실은 실제 국가 정책의 이름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정책이 법 개정과 통계로 남아 있다는 점을 이야기 소재로 삼아 볼 만합니다.
참고 자료
참고:
1.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상세정보
2. 국가기록원 — 국정분야 주제별 기록물 (해당 페이지에서 '범죄와의 전쟁' 주제 선택)
4. 국가법령정보센터 —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연혁법령
5. 한국형사정책연구원 — 형사특별법 정비방안(5)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기관 서버 PDF, 접속이 불안정해 직접 링크는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