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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부산, 한 변호사가 등기소 앞에서 자기 이름이 박힌 명함을 손수 돌립니다. 법복을 벗고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고, 선배 법조인들이 품위 떨어진다며 손대지 않던 부동산 등기를 파고드는 중입니다. 《변호인》은 이 남자가 아주 잘 풀리는 장면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평온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서두르지 않고 순서대로 보여 줍니다.
스포일러 안내: 이 글에는 결말이 포함됩니다.
실존 형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송우석·박진우 등 극중 인물명은 실명이 아니라 각색된 이름입니다.

제작사: 위더스필름 · 배급사: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 출처: 공식 포스터
기본 정보
| 제목 | 변호인 (The Attorney) |
|---|---|
| 감독 | 양우석 (장편 데뷔작) |
| 개봉 | 2013년 12월 18일 |
| 러닝타임 | 127분 |
|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 누적 관객 | 약 1,137만 명(2차 자료 기준) |
| 제작 / 배급 | 위더스필름 / NEW |
| 실제 배경 |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사건 |
출연진
| 배우 | 배역 | 역할 |
|---|---|---|
| 송강호 | 송우석 | 등기와 세무로 자리를 잡은 변호사 |
| 임시완 | 박진우 | 독서 모임을 하다 끌려간 대학생 |
| 김영애 | 최순애 | 진우의 어머니이자 국밥집 주인 |
| 오달수 | 박동호 | 송우석의 사무장 |
| 곽도원 | 차동영 | 사건을 지휘하는 공안 경찰 |
명함을 돌리던 변호사 — 1981년 부산, 잘나가던 사람의 자리
고졸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붙어 판사가 됐다가 옷을 벗고 개업한 송우석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부동산 등기를 전문 영역으로 삼습니다. 아파트가 쏟아지던 부산에서 그 판단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세무까지 넓히며 사무실도 커집니다. 동료들이 뒤에서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습니다. 나는 돈 벌려고 이 일을 한다고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해 버립니다.
시국 사건 이야기가 나올 때의 반응도 한결같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로 잘라 버리고, 거리에 나선 학생들에게는 공부나 하라고 핀잔을 놓습니다. 영화는 이 냉소를 악당의 대사처럼 다루지 않습니다. 겨우 자리를 잡은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려는 태도, 말하자면 생계의 합리성처럼 보이게 내버려 둡니다. 저는 여기서 이 인물의 정체를 읽었습니다. 속물적인 성공을 향해 달리면서도 끝내 완전한 속물은 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양우석 감독은 1990년대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이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송우석이라는 이름부터가 각색이라, 성공담 속 일화를 실제로 옮겨 읽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집에서 봤습니다. 드라마가 중심인 영화는 큰 화면이 아니어도 충분하다는 기준 때문이었는데, 평점이 낮은 편이라고 오래 기억하다가 최근에 확인하고는 조금 민망했습니다.
전반부의 끝에서 그는 7년 전 밥값을 떼먹고 달아났던 국밥집을 찾아갑니다. 빚을 갚겠다고 내민 봉투를 주인 최순애가 밀어내는 짧은 대목에서 그 집 아들 진우를 알게 되는데, 이 장면이 나중에 영화를 통째로 들어 올립니다.
국밥 한 그릇의 빚 — 하지 않아도 될 변론을 맡기까지
진우가 사라집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어디 있는지 알려 주는 곳이 없고, 최순애는 그렇게 두 달 가까이를 보냅니다. 부탁을 받은 송우석은 난감해합니다. 전문 분야가 아닐뿐더러 여태 정성껏 피해 온 종류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접견을 갑니다. 빚 갚는 셈 치고 얼굴만 확인하려던 자리에서, 얼마 전까지 자기 앞에서 밥을 먹던 청년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
남의 일이 아는 얼굴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분이 되지 않습니다. 사무장은 거래처가 떨어져 나갈 것을 걱정하고 기자 친구는 이름을 올리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설명하지만, 그는 다 듣고 선임계를 냅니다.
법정 드라마로 분류되면서도 첫 공판까지 러닝타임의 절반 가까이를 쓴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구조적 선택입니다. 앞쪽 절반이 통째로 성공담이라 관객은 그가 무엇을 잃을지 알고 법정에 따라 들어갑니다.
실제 사건은 1981년 9월 부산에서 시작됐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함께 읽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영장 없이 붙잡혀 갔고, 공소사실의 실질은 책을 읽고 토론한 행위를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다만 변론을 맡게 된 경위는 기록과 다릅니다. 실제로는 피해자 가족의 요청이 아니라 동료 변호사가 손이 모자란다며 부탁한 것이었다고 여러 자료가 전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각색이 작품을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신념이 먼저 서고 행동이 뒤따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얼굴이 먼저 도착하고 신념은 한참 뒤에 생기는 이야기로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장면을 직접 보고 나서야 가치관이 움직인다는 순서가 저에게는 훨씬 사실적이었습니다.
조서와 싸우는 법정 — 이기지 못한 재판에서 그가 남긴 것
법정에서 검사가 내미는 증거는 피고인들이 직접 서명한 자백 조서입니다. 종이 위에서 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송우석은 조서에 적힌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을 묻습니다. 어디에서, 며칠 동안, 누구에게 조사를 받았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팽팽한 대목은 웅변이 터지는 순간이 아니라 그 질문이 가로막히는 순간입니다.
값은 법정 바깥에서 먼저 청구됩니다. 세무 자문 계약이 끊기고, 사무실 전화가 조용해지고,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거리를 둡니다. 신념의 대가를 비장한 음악이 아니라 계약서와 가족의 표정으로 계산해 보여 주는 솜씨가 이 영화의 미덕입니다.

이미지 출처 : TMDB
실제 공판에도 이런 결의 변론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권투 경기에서 특정 선수를 응원한 것까지 이적행위냐는 되물음이 오갔다고 법조 전문지가 보도했습니다. 반면 가장 널리 회자되는 헌법 제1조 낭독 장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고문을 증언하는 군의관도 창작된 인물입니다.
당대의 판결 역시 한 덩어리는 아니었습니다. 1심 재판부 한 곳은 국가보안법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 판단은 서 있지 못했고, 1983년 대법원에서 구속 기소된 19명의 유죄가 확정됩니다.
《1987》 리뷰에서 다룬 이야기가 은폐가 끝내 실패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영화의 1981년은 정확히 반대쪽입니다. 만들어진 진술이 새어 나가기는커녕 공식 절차를 통과해 증거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래서 송우석이 요구한 것은 새로운 정의가 아닙니다.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그때도 이미 인쇄되어 있던 문장을 적힌 대로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온건한 요구가 가장 위험해지는 시대를 보고 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도 왜곡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지금의 일로 옮겨 옵니다.
판결 이후, 법정 밖으로
법정은 결국 유죄를 선고합니다. 조서는 살아남고 변호인은 졌습니다. 그런데 진 다음의 송우석은 이전 자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등기 서류를 들고 다니던 사람이 집회 현장에 서 있고, 그러다 스스로 연행됩니다. 마지막 법정에서 그는 변호인석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앉아 있고, 재판장이 부르는 명단을 따라 부산 지역 변호사들이 한 명씩 일어섭니다. 호명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그 장면이 첫 장면의 남자에게 온 대답입니다.
다만 이 결말은 부림사건의 결과가 아닙니다. 선임계를 낸 변호사가 99명이었다는 일화는 여러 해 뒤 1987년 다른 사건에서 있었던 일이고, 영화는 그것을 끌어와 마지막에 붙였습니다.

영화 스틸샷
영화가 끝난 자리에서 기록은 좀 더 멀리 갔습니다. 2003년 재심 개시가 결정됐지만 검찰의 즉시항고로 절차가 늘어졌고, 2014년에야 청구인 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포함한 전 혐의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영장 없이 스무 날 넘게 구금된 상태의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당한 장면을 마주쳐도 대체로 망설이는 쪽입니다. 나서면 나와 주변 사람에게 돌아올 몫이 먼저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남긴 것은 결심의 교훈이 아니라 순서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작은 인식의 변화가 쌓이면 다음 세대는 조금 더 정의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그때보다 공정해졌다는 감사함입니다. 《서울의 봄》 리뷰가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의 밤을, 《택시운전사》 리뷰가 우연히 현장에 도착한 사람을 따라갔다면, 이 작품은 들어가지 않아도 됐던 사람이 제 발로 들어가는 쪽을 택합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던 사람은 끝내 바위를 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패배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판결 대신 기록을 남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공식 절차 안에 문장으로 남았고, 33년 뒤 다른 재판부가 그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기지 못한 싸움을 어디까지 값지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저도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변호인》은 실화인가요?
A.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난 부림사건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다만 극중 이름은 각색이고 개별 장면에는 영화적 구성이 섞여 있습니다.
Q. 송우석은 실존 인물인가요?
A. 감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모델이 있다는 사실과 극중 일화가 사실이라는 것은 다릅니다.
Q. 영화 속 피고인들은 이후 어떻게 됐나요?
A. 1983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이후 재심이 여러 차례 나뉘어 진행됐고, 2014년 청구인 5명이 전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Q. 헌법 제1조를 읽는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A. 확인되지 않습니다. 공판조서나 판결문으로 뒷받침되는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Q. 실제 사건의 현장은 어디이고 지금은 무엇이 남아 있나요?
A. 불법 구금이 이뤄진 대공분실의 위치와 존치 여부는 공개 자료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재판이 열린 부산지방법원은 당시 부산 서구 부민동 일대에 있었고, 2001년 거제동으로 옮겨 갔습니다. 사건을 다루는 공간으로는 부산 중구 민주공원 상설전시실의 양서협동조합 재현 전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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