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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택시운전사 리뷰: 필름은 나흘, 이름은 37년

기록을 보는 관객 2026. 9. 11. 22:22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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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솔직하게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광주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이 없습니다. 그곳에 살아 본 적도, 1980년 5월을 겪은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저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느꼈다" 같은 문장이 없을 겁니다. 없는 기억을 있는 척 쓰는 것이 이 사건 앞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비추지 않았는지, 그리고 실제 기록과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확인 가능한 자료로 하나씩 맞춰 보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안내: 앞의 세 섹션은 이미 공개된 역사 기록의 범위에서만 씁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인물들의 마무리는 네 번째 섹션 끝의 결말 요약 상자에만 모아 두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그 대목만 건너뛰시면 됩니다.

     

    제작/배급: 더램프 / 쇼박스 영화 소개·리뷰 목적으로만 인용했으며 저작권은 원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기본 정보 — 개봉일부터 관객수까지

    개봉일 2017년 8월 2일
    감독 장훈
    러닝타임 137분
    배경 시대 1980년 5월 광주
    누적 관객 약 1,200만 명대 (보도별로 1,210만~1,218만 등 편차)
    관람 경로 극장 개봉 후 OTT 스트리밍

    개봉일과 러닝타임, 배역 정보는 씨네21 데이터베이스와 위키백과 두 곳을 대조해 적었습니다. 관객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 집계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근거하는데, 보도마다 최종 수치가 조금씩 달라서 단일 숫자로 못 박지 않고 범위로 두었습니다. KOBIS 원 데이터를 직접 열람해 확정한 값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출연진

    배우 배역
    송강호 김만섭
    토마스 크레취만 피터 (위르겐 힌츠페터 모티브)
    유해진 황태술
    류준열 구재식

     

    십만 원짜리 일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 줄거리의 출발점과 두 이방인의 시점

    이 영화의 출발점은 《서울의 봄》 리뷰가 멈춘 자리 바로 다음입니다. 그 글의 결론은 1979년 12월 12일 하룻밤으로 신군부의 권력 장악이 완결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까지 이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그 조치 직후입니다. 같은 시대의 권력 구조를 기업 쪽에서 본 이야기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리뷰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자체는 이 거대한 정치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시작은 훨씬 사소한 돈 문제입니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김만섭은 어린 딸과 단둘이 사는 홀아비이고, 밀린 사글세 십만 원이 인생 최대의 골칫거리인 사람입니다. 시위대 때문에 길이 막히면 창밖에 대고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왜 저러느냐고 투덜대는 쪽에 가깝고요. 그런 그가 기사식당에서 옆자리 동료의 통화를 우연히 엿듣습니다. 외국인 손님 하나가 광주까지 갔다가 통행금지 전에 서울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십만 원을 부른다는 이야기였고, 만섭은 그 일감을 가로채 손님 앞에 먼저 차를 댑니다. 액수가 밀린 방값과 정확히 같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삼십 분 동안 5·18에 대한 설명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화면을 채우는 것은 사글세와 딸의 신발, 흥정과 허세 같은 생활의 목록입니다. 저는 이 뻔뻔한 생활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처음부터 의로운 사람으로 세워 두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그가 무언가를 포기하는 순간이 값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대쪽 손님인 독일 기자 피터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그는 도쿄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특파원이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소문만 듣고 내려가는 중입니다. 요컨대 이 차에 탄 두 사람 모두, 자기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모르는 채로 남쪽으로 달립니다.

    연출 쪽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선택은, 감독이 광주를 아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의 눈 두 개를 포개 놓았다는 점입니다. 한쪽은 한국어를 못 하는 독일 기자이고, 다른 한쪽은 광주가 어디 붙었는지도 관심 없던 서울 택시기사입니다. 두 사람 다 그 도시의 맥락 밖에 있고, 그래서 관객은 설명을 듣는 대신 두 사람이 창밖을 보며 뒤늦게 이해하는 속도를 따라가게 됩니다. 택시 앞유리라는 프레임이 카메라 뷰파인더와 계속 겹쳐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둘 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네모난 창"이니까요.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리듬은 의외로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남자가 같은 차 안에서 서로 딴소리를 하고, 만섭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한가하게 운전대를 두드립니다. 그러다 광주로 들어가는 큰길이 완전히 봉쇄돼 있는 것을 보면서 공기가 처음으로 서늘해집니다. 여기서 각색과 기록이 갈리는 지점이 나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검문소를 통과하려고 사업상 중요한 서류를 회수하러 간다는 명목을 둘러댑니다. 나무위키의 실화 대조 문서는 실제로는 힌츠페터 본인이 외국 회사 주재원 신분을 자처하면서 광주에 남아 있는 직원을 데리고 나오겠다고 말해 통과했다고 정리합니다. 다만 이 서술은 위키 기반 2차 자료이고 감독이나 본인의 1차 증언으로 교차확인하지는 못했으므로, 저도 단정 대신 그런 차이가 알려져 있다는 정도로만 적어 둡니다. 샛길로 돌아 도시에 들어갔다는 큰 줄기 자체는 기록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관객 입장에서 이 대목이 영리하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필요한 것이 용기가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것, 그것도 돈벌이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영화가 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섭은 아직 아무 대의도 없습니다. 그는 그냥 요금을 받아야 하는 기사이고, 그래서 봉쇄선을 뚫는 첫 장면이 영웅담이 아니라 생계의 장면이 됩니다. 전반부의 이 톤 조절이 후반부의 무게를 지탱합니다.

    물론 이 구조에는 대가도 따릅니다. 시점의 주인이 외부인이다 보니, 정작 그 도시에서 싸우고 죽은 사람들은 상당 부분 배경이 됩니다. 유해진이 연기한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과 류준열이 연기한 대학생 구재식은 이 불균형을 보정하려고 배치된 인물처럼 보이는데, 특히 구재식은 관객의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기능이 너무 뚜렷해서 저는 조금 눈에 밟혔습니다. 잘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것과 설계가 보인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요약: 이야기는 대의가 아니라 밀린 사글세 십만 원에서 시작합니다. 감독은 광주를 모르는 두 외부인의 시선을 포개어 관객을 뒤늦은 이해의 속도에 태우고, 대신 그 도시 사람들이 배경으로 밀린다는 대가를 치릅니다.

     

    도시에 들어선 순간부터 — 영화가 압축한 1980년 5월의 열흘

    영화가 담는 시간은 대략 닷새 남짓이지만, 그 닷새는 훨씬 긴 열흘의 한복판입니다. 순서를 먼저 정리하는 편이 영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그 직후 광주에서 항쟁이 시작됩니다. 독일 제1공영방송(ARD)의 도쿄 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에 머문 것은 5월 20일부터 23일까지이고, 촬영분을 들고 도시를 빠져나온 것은 22일 오전입니다. 그리고 계엄군의 최종 진압은 5월 27일 새벽 3시 30분을 기점으로 실행된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으로 끝납니다.

    영화는 이 열흘 가운데 기자가 머문 나흘에 맞춰 이야기를 붙입니다. 택시가 시내로 들어서는 순간 톤이 한 번에 바뀝니다. 앞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인적이 끊긴 도로와 불에 그을린 차량, 그리고 트럭 짐칸에 올라타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 시민들입니다. 이들은 태워 달라는 손님도 아니고 피해야 할 시위대도 아닌, 만섭이 서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풍경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상황 설명을 해 주는 대신 만섭의 표정이 굳는 속도만 보여 줍니다. 조금 뒤 영어를 더듬더듬하는 대학생 구재식이 통역으로 붙고, 광주에서 택시를 모는 황태술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면서 두 외지인은 이 도시의 사람들과 밥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다음이 이 영화에서 가장 숨이 막히는 구간입니다. 피터는 금남로의 인파와 진압 현장, 그리고 부상자가 실려 오는 병원을 차례로 카메라에 담고, 만섭은 그 옆에서 촬영을 돕다가 자기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편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영화의 매끈한 화면 사이사이에 피터의 뷰파인더 화면, 그러니까 거칠고 흔들리는 소형 화면을 끼워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같은 사건이 두 번 보이는데, 두 번째 화면이 훨씬 견디기 힘듭니다. 화질이 나쁠수록 그것이 기록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구간에서 음악이 감정을 앞질러 나가는 순간이 몇 번 있었고, 저는 차라리 소리를 덜어 냈으면 더 무서웠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첫째, 영화가 끝나는 지점은 항쟁이 끝나는 지점이 아닙니다. 택시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그 도시에는 닷새가 더 남아 있었고,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서술에 따르면 마지막 작전에서는 20사단과 31사단이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고 공수여단 특공조가 시내로 침투했습니다. 투입 병력 규모를 숫자로 적은 자료도 돌아다니지만 1차 자료로 확인하지 못해 부대 이름까지만 옮깁니다. 관객이 스크린에서 본 것은 이 열흘의 앞부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편이 좋습니다.

    둘째, 희생 규모입니다. 널리 인용되는 공식 집계는 606명이고, 그 내역은 항쟁 당시 사망 165명, 행방불명 65명, 상이 후 사망 추정 376명으로 나뉩니다. 이 수치는 5·18민주유공자유족회와 부상자회, 5·18 기념재단 등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며, 1980년 광주시 보건사회국이 생산해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사망자 조서 같은 행정기록에 근거합니다. 중요한 건 이게 확정된 총량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암매장이나 미신고 사례를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더 클 수 있다는 단서가 이 통계에는 늘 함께 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숫자를 "밝혀진 최소치"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 타임라인을 알고 보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이 왜 그렇게 급하게 지나가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137분 안에 열흘을 다 넣을 수는 없고, 감독은 필름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순간을 종착점으로 골랐습니다. 그건 영화의 결함이라기보다 주제 선택입니다. 다만 그 선택 때문에 5월 27일 새벽이 화면 밖으로 밀려났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약: 영화가 담은 닷새는 열흘의 앞부분일 뿐이며, 공식 집계 606명도 확정치가 아니라 행정기록으로 확인된 최소치에 가깝습니다.

     

    필름은 나흘, 이름은 37년 — 영화가 비춘 목격자와 비추지 않은 기록자

    중반을 넘어가면 이야기는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집니다. 이 필름을 어떻게 도시 밖으로 내보낼 것인가. 만섭에게는 그 질문에 끼어들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에는 혼자 있는 딸이 있고, 통행금지 시간은 다가오고, 약속한 요금은 이미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니까요. 실제로 그는 한 번 마음을 접고 차를 돌립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잘 쓰인 대목이 바로 그 흔들리는 구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송강호는 여기서 결심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계속 계산하는 사람의 얼굴을 합니다.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한 화면에 같이 들어 있는데, 그 계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가 어느 쪽으로 핸들을 꺾는지가 후반부 전체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 덕분에 필름은 국경을 넘습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건 감동보다 하나의 비대칭이었습니다. 광주에서 찍힌 필름이 국경을 넘어 전파를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나흘도 되지 않았습니다. 5월 22일 오전에 도시를 빠져나온 필름은 서울을 거쳐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곧장 서독으로 발송돼 함부르크 뉴스센터에 닿았습니다. 같은 날 저녁 8시 북부독일방송(NDR) 뉴스가 이를 내보냈습니다. 반출한 그날 저녁에 이미 유럽의 안방에 도착했다는 뜻입니다.

    반대쪽 시간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 필름을 실어 나른 택시기사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2017년 9월, 영화가 개봉하고도 한 달쯤 지난 뒤였습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아들 김승필 씨가 사진과 정황을 들고 언론에 나섰고, 당시 파레스호텔 상무이사였던 이원무 씨가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면서 신원이 맞춰졌습니다. 밝혀진 사실 가운데 저를 가장 오래 붙든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김사복이 가명이 아니라 본명이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를 오래 찾지 못한 이유가 그가 일반 택시운송조합 소속이 아니라 서울 회현동 파레스호텔이 굴리던 관광택시 기사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찾을 사람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니라, 찾는 사람들이 엉뚱한 명부만 뒤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는 1984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광주가 재평가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고인이었습니다. 다만 극 중 "김만섭"은 이름부터 다른 각색 캐릭터이므로 실존 인물과 1:1로 포개 놓지는 않는 편이 맞습니다.

    필름 자체의 반출 방식도 자료마다 갈립니다. 널리 통용되는 서술은 과자 금속캔에 숨겼다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부는 허리띠에 두르고 나머지는 로열 단스크 버터 쿠키 캔에 넣었다는 정리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 1차 자료로 못 박지 못했으니 두 서술을 나란히 적어 둡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편차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며칠의 기록이 얼마나 급박하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비추지 않은 쪽이 있습니다. "5·18을 세계에 처음 알린 사람은 힌츠페터"라는 통념에 대해, 미국 CBS 서울지부 소속 영상기자였던 유영길 촬영감독이 5월 19일 금남로에서 진압 장면을 찍었고 그 영상이 같은 날 미국 CBS를 통해 먼저 나갔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날짜만 놓고 보면 힌츠페터의 체류와 반출보다 앞섭니다. 씨네21과 오마이뉴스가 같은 취지로 다뤘고, 유영길은 2021년 제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오월광주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41년 만에 재조명됐습니다. 시상 주체가 5·18 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이견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 보도 기반이므로 저도 "누가 최초였다"라고 확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순위가 아닙니다. 기록은 빨리 국경을 넘는데 기록한 사람의 이름은 수십 년씩 뒤에 도착한다는 이 시차가, 이 영화의 진짜 주제라는 것입니다.

    요약: 필름은 반출 당일 유럽 뉴스에 올랐지만 운전기사의 이름이 확인되기까지는 37년이 걸렸습니다. 그 시차가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

     

    연기와 연출에 대한 총평, 그리고 끝내 아쉬웠던 한 장면

    먼저 잘된 쪽부터 말하겠습니다. 이 영화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각성의 순간에 거창한 대사를 붙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송강호는 깨달음을 설명하는 대신 운전대를 쥔 손과 백미러를 살피는 눈으로 처리하고, 카메라도 그럴 때마다 얼굴을 크게 잡지 않고 한 발 물러서 있습니다. 유해진은 더 재미있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그가 연기하는 광주 기사는 손님을 챙기고 밥을 먹이는 생활인의 얼굴로 등장해서, 이 도시 사람들이 특별히 용감한 종족이 아니라 그냥 살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대사 없이 증명합니다. 반대로 류준열의 구재식은 앞에서 적었듯 기능이 앞서 보였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처럼 명백히 눈물 스위치로 설계된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나 보게 되더군요. 137분이라는 길이도 넉넉하지는 않아서, 광주 시민들이 서로를 설득하고 조직하는 과정은 거의 생략됩니다. 관객 약 1,200만 명대라는 기록이 소재의 무게만으로 나온 숫자는 아니지만, 그 흥행의 상당 부분이 배우 두 사람의 얼굴에 빚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판도 분명히 적어 두겠습니다. 후반부에서 광주를 빠져나오는 택시를 다른 택시들이 몰려나와 막아 주는 장면은 창작된 각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검문이 워낙 심해 문제의 택시 한 대가 겨우 빠져나온 상황이었던 만큼 다른 차들까지 그렇게 나설 수 있었겠느냐는 지적이 개봉 당시에도 나왔습니다. 이 서술의 출처가 위키 계열이라 1차 자료 확인은 남아 있지만, 극적 허구라는 판단 자체는 여러 평에서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불편했던 이유가 사실관계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앞의 두 시간 동안 공들여 쌓은 것은 "평범한 사람이 무서워하면서도 한 번 더 핸들을 돌린다"는 작고 구체적인 용기인데, 그걸 마지막에 대규모 연대의 카타르시스로 바꿔치기하면서 오히려 주제의 밀도가 옅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진짜 무서운 건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쪽이니까요.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제 제안은 이렇습니다. 이 작품을 5·18에 대한 교과서로 삼지는 마십시오. 영화는 사건의 전모가 아니라 사건이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 하나를 확대해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그 통로를 따라가고 나면, 그다음에 봐야 할 것은 국가기록원과 5·18기념재단이 공개한 기록 쪽입니다. 저는 이 리뷰를 쓰면서 통계의 집계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행정문서가 근거인지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영화보다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그리고 서두에 적었듯 저에게는 광주에 대한 개인적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정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남이 목숨 걸고 남긴 기록을 정확하게 옮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하고 있는 일도 그것이고요.

    결말 요약 (스포일러 주의) — 이 문단만 건너뛰셔도 나머지 글은 이해에 지장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본 것 때문에 돌아설 기회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함께했던 광주 사람들 중 일부는 살아남지 못하고, 택시는 우여곡절 끝에 도시를 벗어나 기자를 공항까지 데려다줍니다. 기자는 필름을 안고 출국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진짜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채 헤어집니다. 영화는 세월이 흐른 뒤 실제 힌츠페터의 영상 인터뷰로 닫히는데, 그는 끝내 그 운전기사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취지의 말을 남깁니다. 현실에서 그 기사의 신원이 밝혀진 것은 영화가 극장에 걸린 뒤였고, 본인은 그보다 33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택시운전사》는 실화인가요?

    A. 1980년 5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광주 취재와 그를 태운 한국인 택시기사라는 실제 사건을 뼈대로 삼은 각색 영화입니다. 큰 줄기는 기록과 맞지만 배역 이름과 대사, 후반부 추격 장면 등 상당 부분은 창작입니다.

     

    Q. 김만섭은 실존 인물 김사복과 같은 사람인가요?

    A. 김사복(1932~1984)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지만 이름부터 다르므로 동일 인물로 보기보다 각색된 캐릭터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김사복은 본명이며 가명이 아니었고, 서울 회현동 파레스호텔 소속 관광택시 기사였다는 점이 2017년 9월 언론 보도로 확인됐습니다.

     

    Q. 힌츠페터가 5·18을 세계에 처음 알린 기자인가요?

    A. 그렇게 알려져 왔지만, 미국 CBS 서울지부 영상기자 유영길이 1980년 5월 19일 금남로를 촬영해 같은 날 CBS로 보도됐다는 반론 보도가 있습니다. 유영길은 2021년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오월광주상을 받았습니다. 언론 보도 기반이므로 단정보다는 이견으로 함께 기억해 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Q. 영화가 다루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A.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최종 진압(상무충정작전)과 그 이후입니다. 영화는 필름이 국경을 넘는 시점에서 멈추기 때문에, 항쟁의 마지막 며칠은 화면에 담기지 않습니다.

     

    Q. 5·18의 공식 사망자 수는 몇 명인가요?

    A. 유족회와 부상자회, 5·18기념재단 등이 함께 발표한 606명이 널리 인용됩니다. 내역은 본문 타임라인 섹션에 적어 두었습니다. 확정된 총량이 아니라 행정기록으로 확인된 최소치에 가깝다는 점을 전제로 읽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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