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내일을 바라던 사람이 총을 들기까지,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화려한 휴가》의 줄거리를 따라 오늘의 자유를 가능하게 한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제작사: 기획시대 ·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 출처: 공식 포스터 기본 정보항목내용감독·개봉김지훈 · 2007년 7월 25일장르·상영시간·등급드라마 · 126분(영상자료원 상영본) · 12세이상관람가배경1980년 5월 광주출연진배우배역김상경택시기사 강민우이준기동생 강진우이요원간호사 박신애안성기퇴역 장교 박흥수 동생의 내일을 바라던 택시기사한국영상자료원의 소개에서 민우는 부모를 여의고 동생 진우와 살아가는 택시기사입니다. 동생이 잘되기를 바라고, 간호사 신애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그의 하루를 채웁니다. 거대한 역사를 설명하기 전에 지키고 싶은 ..
총을 겨눈 쪽과 겨눠진 쪽이 같은 말로 인사를 나눕니다. 《밀정》의 첫 시퀀스에서 제 귀에 먼저 걸린 것은 총성이 아니라 그 사실이었습니다. 침략의 역사를 통과한 나라에서 자란 탓인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웬만하면 빠뜨리지 않고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오래 남았습니다.김지운 감독이 2016년에 내놓은 이 영화는 1923년의 이른바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어느 편인지 끝에 가서 분명히 알려 줍니다. 그런데 그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에게는 그 확인이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따라가려는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행동으로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의 진심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제작사: 영화사 그림 · 배급사: 워너브러더..
1981년 부산, 한 변호사가 등기소 앞에서 자기 이름이 박힌 명함을 손수 돌립니다. 법복을 벗고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고, 선배 법조인들이 품위 떨어진다며 손대지 않던 부동산 등기를 파고드는 중입니다. 《변호인》은 이 남자가 아주 잘 풀리는 장면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평온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서두르지 않고 순서대로 보여 줍니다.스포일러 안내: 이 글에는 결말이 포함됩니다.실존 형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송우석·박진우 등 극중 인물명은 실명이 아니라 각색된 이름입니다. 제작사: 위더스필름 · 배급사: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 출처: 공식 포스터기본 정보제목변호인 (The Attorney)감독양우석 (장편 데뷔작)개봉2013년 12월 18일러닝타임127분관람등급15세 이상 ..
영화를 보기 전에 리뷰를 먼저 읽는 편입니다. 줄거리와 배경을 알고 가면 재미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장면 속에서 모르고 지나칠 요소를 더 찾게 됩니다. 《암살》도 그렇게 극장에서 만났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한 번의 관람이 두 번 본 것처럼 남았습니다.스포일러 안내: 이 글은 결말과 주요 반전을 포함합니다.제작사: 케이퍼필름 · 배급사: 쇼박스 · 출처: 공식 포스터기본 정보제목암살 (Assassination)감독최동훈출연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조진웅, 최덕문 등개봉2015년 7월 22일제작 / 배급케이퍼필름 / 쇼박스출연진전지현은 안옥윤과 미츠코, 이정재는 염석진, 하정우는 하와이 피스톨을 맡았습니다. 조진웅의 속사포와 최덕문의 황덕삼은 작전의..
“비겁한 변명입니다.” 《실미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 대사는 명령을 거부한 사람보다 명령에 순응한 사람을 향합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제 눈에는 강인찬만 들어왔습니다. 최근 다시 보니 시선은 박상근 중사에게 멈췄습니다. 끝까지 저항하는 영웅보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우리와 더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영화는 684부대의 탄생부터 1971년 8월 23일의 최후까지 직선으로 달립니다. 다만 실존 부대를 다뤘다고 모든 장면이 사실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대원이 사형수였다는 출발점과 부대원 제거 명령은 영화와 공식 조사 사이에 큰 간격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줄거리 순서에 맞춰 살펴보겠습니다.※ 안내: 아래 내용에는 결말이 포함됩니다. 실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을 다루며,..
"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건 이 한마디를 들은 다음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거래는 당시 국군의 제도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국가기록원의 징병 관련 자료에도, 병역법 연혁에도 훈장과 제대를 맞바꾼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이 영화를 끝까지 밀고 가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전쟁이 만든 규칙이 아니라 영화가 만든 규칙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글이 붙들 질문은 "6·25를 얼마나 정확히 재현했는가"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지키려는 책임감이 그 사람을 지키는 일에서 떨어져 나와 '지키는 사람'이라는 역할 자체에 중독될 때, 그 경계는 어디에서 넘어가는가. 동생이 형에게 끝내 하는 말도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라 형이 변했다는 항의입니다. 줄거리를 순..
조선왕조실록에 남은 광대 공길의 기록은 하루치 기사 한 건이 전부입니다. 늙은 선비 흉내를 내며 임금 앞에서 논어의 한 대목을 외웠고,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맞고 먼 곳으로 쫓겨났다는 것. 시작도 끝도 없이 그 몇 문장뿐입니다. 그 한 줄에서 두 시간짜리 영화가 자라났고, 그 영화를 1,230만 명이 봤습니다.그래서 이 글이 붙들 질문은 "《왕의 남자》가 연산군 시대를 잘 재현했는가"가 아닙니다. 힘없는 자의 풍자가 권력자에게 받아들여졌을 때, 그것은 승리인가 포섭인가. 저잣거리에서 왕을 조롱하던 똑같은 놀이가 궁궐 담을 넘는 순간 왕이 신하를 베는 칼로 용도를 바꾸는 과정 — 저는 이 영화를 그 소유권이 넘어가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줄거리를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어느 대목이 기록이고 어느 대..
정주영, 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김동건. 《국제시장》에 실명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기업인 하나, 패션 디자이너 하나, 가수 하나, 씨름 선수 하나, 방송 진행자 하나. 이 다섯을 나란히 적어 놓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덕수의 인생을 통째로 뒤집어 놓은 사건들은 전부 국가가 내린 결정의 결과인데, 정작 그 결정을 내린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화면에 없거든요. 유명해진 개인은 나오고, 결정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붙들 질문은 "이 영화가 아버지 세대를 잘 그렸는가"가 아닙니다. 개인이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결정의 결과를, 영화가 개인의 선택으로 번역할 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는가. 파독도 파병도 기록상으로는 국가와 국가가 맺은 계약의 산물인데, 영화는 그 계..
1987년 1월 15일,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하루 전 숨진 서울대생의 사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냉수를 몇 컵 마신 뒤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것, 그러니까 단순 쇼크사라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활자로 읽었을 때 화보다 어이없음이 먼저 왔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말이 저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저 말을 국가가 공식 발표로 내놨다는 것. 서른 해가 넘게 지난 지금도 저 한 문장이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거짓말은 정교할 때보다 허술할 때 더 오래 남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그 발표는 나흘 만에 무너집니다. 1월 19일 경찰은 물고문 사실을 공식 인정했고, 그해 6월 거리는 이 사건의 이름을 부르며 가득 찼습니다. 장준환 감독..
먼저 솔직하게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광주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이 없습니다. 그곳에 살아 본 적도, 1980년 5월을 겪은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저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느꼈다" 같은 문장이 없을 겁니다. 없는 기억을 있는 척 쓰는 것이 이 사건 앞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보여 주고 무엇을 비추지 않았는지, 그리고 실제 기록과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확인 가능한 자료로 하나씩 맞춰 보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안내: 앞의 세 섹션은 이미 공개된 역사 기록의 범위에서만 씁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인물들의 마무리는 네 번째 섹션 끝의 결말 요약 상자에만 모아 두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